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프 데어발 (문단 편집) == 지도자 경력 == [[파일:external/www.uefa.com/1725233_w2.jpg|width=400]] [[파일:external/mediadb.kicker.de/derwall_horstrschmidt380-1182868427.jpg|width=400]] 그 후 1959년 스위스의 비엘-비엔느로 팀을 옮겨 선수 겸 감독 생활을 하였는데 스위스에서도 1960 스위스 슈퍼리그 준우승을 맛보게 된다. 1960년에는 같은 스위스 리그인 FC 샤프하우젠의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하였고 1962년에는 독일로 복귀하여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감독, 1965년에는 FC 자르브뤼켄 감독을 역임했던 유프 데어발은 1970년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[[헬무트 쇤]]의 부름을 받아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임명된다. 그리고 1972년 뮌헨 올림픽 감독과 아마추어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[[울리 회네스]], [[오트마어 히츠펠트]] 같은 선수들을 지도 하며 독일 올림픽 대표를 8강까지 이끌었다.데어발은 헬무트 쇤을 1978년 월드컵 까지 보좌했고 헬무트 쇤이 78 월드컵 이후로 은퇴를 선언하자 같이 헬무트 쇤을 보좌 하기도 했던 [[에리히 리베크]]와 감독직 물망에 올랐다. 독일 축구협회는 유프 데어발을 선택하여 헬무트 쇤의 후임감독으로 유프 데어발이 임명되었다. 감독으로 임명된 직후 참가한 유로 80 지역예서는 초반 두경기 [[몰타 축구 국가대표팀|몰타]]와 [[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|튀르키예]]를 상대로 원정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불안하게 출발하였지만 그 이후 [[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|웨일스]]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각각 2-0, 5-1로 승리를 거뒀고 터키를 홈에서 2-0, 몰타를 홈에서 8-0를 기록하며 조 1위로 본선진출에 성공했다. 본선에서는 [[체코 축구 국가대표팀|체코슬로바키아]]와 [[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|네덜란드]], [[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|그리스]]와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. 체코,네덜란드를 상대로 1-0, 3-2 승리를 기록했고 그리스와 0-0무승부를 기록하며 조 1위로 결승에 진출한다.[* 유로 80은 8국가가 두 조로 나뉘었고 조 1위가 곧바로 결승 진출, 조2위가 3-4위전을 치렀다.] 결승전에서는 호르스트 흐루베슈를 앞세워 결승전에 오른 [[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|벨기에]]를 상대로 2:1 승리로 유로 80 우승을 차지한다. 82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[[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|오스트리아]], [[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|불가리아]], [[알바니아 축구 국가대표팀|알바니아]], [[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|핀란드]]와 같은 조에 속했으나 이 4국가를 홈과 원정에서 모두 무너뜨리며 8전 전승으로 본선 진출에 성공한다. 1차 본선에서는 오스트리아, [[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|알제리]], [[칠레 축구 국가대표팀|칠레]]와 같은 조에 속한다. 첫 경기 상대는 알제리. 알제리를 아주 우습게 본 유프 데어발은 "알제리를 이기지 못하면 바로 기차타고 집으로 가겠다" 라며 호언장담을 하지만 1:2 패배를 당해 개망신을 당한다. 알제리에게 패배하면 기차타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약속과는 달리 패배를 한 뒤에도 계속 스페인에 남아 대표팀을 지휘했고 칠레를 상대로 루메니게의 해트트릭을 포함해 4-1 대승, 본선에서 다시 만난 오스트리아와 [[히혼의 수치|역사에 남을 추태 끝에 1-0 승리를 거둬]] 2승 1패를 기록하지만 오스트리아와 알제리 역시 2승 1패로 3자 동률을 기록한다. 다만 골득실차로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진출을 하는데 칠레를 상대로 대승이 아니었다면 본선에서 탈락했을지도 모를일이다. 2차 본선[* 1982 월드컵은 24개국 1차 본선과 12개국 2차본선 뒤 4강→결승으로 진행되었는데 자세한 대회진행 방법은 [[1982 FIFA 월드컵 스페인]] 문서 참고.]에서는 [[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|잉글랜드]]와 [[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|스페인]]과 같은조에 배정되었다. 잉글랜드와 0-0 스페인을 상대로 2-1승리를 거워 조 1위로 4강에 진출한다. 4강전에서는 [[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|프랑스]]를 상대로 1:1 무승부 후 돌입한 연장전에서 92분, 98분 연속으로 득점을 허용하여 패배가 확실시 됐으나 102분 루메니게의 득점과 108분 [[클라우스 피셔]]의 득점으로 극적으로 승부차기로 승부를 몰고간다. 승부차기에서는 5:4로 승리하여 결승에 진출한다. 그러나 결승전에서 만난 [[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|이탈리아]]에게 3:1로 패배하여 데어발 통산 5번째 '''준우승'''을 기록한다. 그 뒤 유로 84 지역예선에서는 [[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|북아일랜드]] 와 80 월드컵 지역예선과 1차 본선에 이어 3번 연속 만나게 된 오스트리아, 역시 유로 80에서 만난 적이 있는 터키, 82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만난 알바니아와 같은 조에 배정된다. 첫 경기 북아일랜드 원정에서 패배를 당하며 불안하게 시작한 유프 데어발은 알바니아 원정, 터키 원정에서 승리, 오스트리아 원정에서 무승부(0-0) 후 홈에서 승리(3-0), 홈에서 터키를 상대로 5-1 대승을 거두며 유로 84 진출을 확정짓는듯 싶었으나 홈에서 북아일랜드에게 다시 패배한다. 알바니아를 상대로 2-1 승리를 거뒀으나 당시 북 아일랜드와 5승 1무 2패로 동률을 이뤘다. 다만, 이길때는 확실히 대승을 거둔 덕에 골득실차로 본선에 진출한다. 유로 84에서 스페인과 [[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|포르투갈]], [[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|루마니아]]와 같은 조에 배정된다. 그러나 포르투갈과 무승부, 스페인과 경기에서 패배를 하며 1승 1무 1패로 조 3위로 4강 진출에 실패한다. 4강 진출에 실패한 데어발은 성적 부진에 책임을 느끼고 [[프란츠 베켄바워]]에게 감독직을 물려준뒤 사임한다. 국가대표직에서 물러난 데어발이 차기 행선지로 택한 곳은 다름아닌 터키. 당시 터키 클럽들은 국제 무대에서 큰 인상을 준 적이 없고 축구 발전에서 뒤떨어져 있었으나 [[갈라타사라이 SK]] 감독으로 부임한 데어발은 자신이 그 동안 서독 대표팀 코치, 감독 시절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 기술방법과, 트레이닝, 전술 아이디어를 터키에 도입해 터키 축구의 부흥을 이끌며 '''혁명가'''라는 찬사를 받았다. [[https://www.theguardian.com/news/2007/jun/29/guardianobituaries.football|#]] 1984년부터 1987년까지 3시즌 동안 갈라타사라이를 맡으면서 한차례의 리그 우승과 FA컵, 슈퍼컵 우승을 이끌었고, [[파티흐 테림]]과 같은 터키의 명장들을 지도하기도 하며 그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. 1987년, [[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]]의 감독직 제의나 [[분데스리가]] 클럽들의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60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. 터키내에서도 터키 축구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2000년 [[앙카라]]대학의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. 그 뒤 노후 생활을 보낸 데어발은 2007년 6월 26일 사망했다. 사망 후 갈라타사라이에서는 헌정의 의미로 내부 훈련장의 이름을 유프 데어발의 이름을 차용하여 건설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